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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4. 14世 〉35. <부정공>만락정중수기(晩樂亭重修記)휘유원(諱維元)
1. 문헌 목록 〉14. 14世 〉37. <부정공>미산재중건기(嵋山齋重建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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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부정공>남산재기(南山齋記)휘진구(諱晋耉)
南山齋記 玉川趙氏墳菴在順天府峩嵋山之南扁以南山齋者因其地而名之也趙氏之先有 端廟忠臣節愍公八代孫學生公諱晋耈配礪山宋氏各窆于住岩鄉鰲山前麓墓洞子坐阡其長子通德郎公亦葬于階下雲仍列居其下歲薦一祀而齋宿無所慨然於是后孫秉良秉蓁季燮極力周旋合謀諸族往年丁亥就其羡下而始役易歲吿訖記尚有闕主鬯孫圭鳳要余一言以光之余應曰夫人之上墓也履霜悽愴情之常也臨祭致敬禮之常也不有不常則誠之慢也其敬與慢皆在自勵而己矣奚關記之有無哉然無己則有一可諗根之厚者枝必蕃源之深者流必遠矣趙氏之門忠孝繼世孺人宋氏配德極備奉舅姑以孝事君子以敬一意治案以興家道宗族鄉黨莫不稱善此可謂根其厚而源其深矣凡入斯齋者苟能交修共勉於孝悌之道皆以今日之心爲心齋而致其敬祭而致其誠永久不替則齋亦與丘陵同其不變而傳於無窮矣請以是遂書此以歸之 時戊申秋 恩津 宋在晟 記 남산재기(南山齋記) 옥천 조 씨의 분암(墳菴)이 순천부 아미산(峨嵋山) 남쪽에 있어 남산재로 현판한 것은 그 지명을 따라 이름한 것이다. 조 씨의 선계에 있는 端宗 때의 충신, 절민공의 八대손 학생공 휘 진구(晋耈)와 배(配) 여산 송 씨(礪山宋氏)를 각기 주암면, 오산의 앞산 기슭묘동 子坐의 언덕에 묘소를 정하고 장자 통덕랑공을 그 계하에 장사한 후에 자손이 그 아래에 살며, 묘제를 지내는데 재계하며 거처할 처소가 없으므로 감개하여 이에 후손 병랑(秉良), 병진(秉蓁), 계섭(季燮)이 힘을 모아 주선하여, 제족과 합의하고 지난 정해년에 묘 아래에다 재실을 짓기 시작하여 다음해에 낙성하였으나, 아직 기문이 없으므로 종손 규봉(圭鳳)이 나를 찾아와記文을 청한다. 내가 응하되 대범 사람이 묘소에 올라 서리를 밟고 슬퍼한 것은 정의의 떳떳한 것이요. 제사에 임하여, 공경한 것은 예의에 떳떳한 것이라. 가지지 않고 떳떳하지 않으면, 정성이 해이할 것이니, 그 공경과 게으름은 스스로 힘쓰기에 달려 있지 어찌 기문의 유무에 있으리오. 그러나 굳이 청하므로 한 가지로 옳게 고하니 뿌리가 견고한 것은 반드시 가지가 번성하고 근원이 깊으면 반드시 장원한 것이다. 조 씨 문중에 충효를 대대로 잇고, 유인 송 씨(孺人宋氏)의 배덕(配德)이 다 갖추어져 시부모를 효도로써 받들고, 군자를 공경으로써 섬기며, 산업을 다스려 가도를 일으키므로, 종족과 향당이 큰소리로 칭선하니 이를 가히 뿌리가 굳고 근원이 깊다 말할 수 있겠다 무릇 이 재에 오르는 자는 진실로 서로 닦고 함께 효제의 도를 힘써 오직 마음으로써, 마음하여 재계할 때 공경을 일으키고, 제사 때 정성을 다하여 영구히 폐하지 아니한 다면 재각이 또한 큰 산등성이와 함께 변하지 않고 영원히 전할 것이다. 청에 따라 마침내 이와 같이 써서 돌려보내노라. 恩津 宋在晟 씀 南山齋原韻 萬麓嵋南有此臺 漕溪山水無塵潔 洞天幽闃別庄開 龍谷風烟帶月來 詞友逢時成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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